BGM :♭ 선우정아/구애
손녀와 할머니가 있었다. 할머니의 손에 딱 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비닐 봉지가 들려 있었다. 시장에서 쉽게 보는 그 까만색 비닐봉지. 손녀는 떼를 썼다. 이거 내가 들게! 할머니는 손녀의 손에 무엇인들 쥐어주지 않으셨다.
나와 엄마가 있었다. 엄마의 손에 딱 보기에도 가족을 먹여 살릴 식량이 가득 들은 비닐 봉지가 들려 있었다. 이마트에서 쉽게 보는 그 반투명 주황색 비닐봉지. 나는 떼를 썼다. 별로 안 무겁다니까! 엄마는 주먹 쥔 손이 풀릴 일은 없었다.
나는, 그냥 이 장면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. 화장기 묻지 않은 어린 얼굴, 꾸미지 않아 자연스럽게 가라앉은 생머리, 아직 빠지지 않은 젖살, 그리고 그 옆에 당신의 세월만큼 주름이 진 할머니.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목격된 어느 날 밤에는 바람이 칼을 내려놓고 한삼을 살랑였다.
엄마. 정말로 봄이 왔나 봐.
/2019.03.10. 22:00