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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랍장

홍진경의 글과 가사

 

01/

추석이 끝나가는 월요일 저녁 홍대 앞을 정신과 나는 걸었다. 우리 둘의 몸에서는 비누 향기가 났다. 나는 정신이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. 정신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까부터 어떤 카메라에 관해 떠들고 있다. 정신아, 우린 마치 서수남 하청일 같아. 우리가 같이 걸으면 그래서 더 사람들이 쳐다보나 봐. 속으로 그러면서 난 서수남 아저씨를 한 번 생각해 본다. 아 시발 다음 세상에선 키도 아담한 예쁜 여자로 한 번 태어나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.

 

02/

정신에게

취향과 감흥이 다른 여러 사람 알면 뭐 해. 그것은 자랑거리도 못 되고 그저 불려 다녀야 하니 몸만 피곤한 것. 나는 성격이 좀 모가 나도 삐딱해도 너의 파리한 손끝과 예민한 핏대에 순종하여 함께 있는 시간이 달다. 그리하여 이제껏 본 적 없는 긍정적인 내가 된다. 이런 것은 참 좋은 것. 뭐라 해도 달콤한 것. 네가 좀 못됐어도 내가 취향과 감흥이 다른 여러 착한 사람을 알면 또 무엇해. 그것은 역시 자랑거리도 못 되고 많은 이들 가운데에 외롭기만 그지없다.

 

03/

지난주에 CMKM의 원고를 마감했고 여전히 꾸준한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. 열다섯 개의 이야기란 단편 소설은 어제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. 한편 꼬리에 꼬리를 무는 미술 이야기가 이제 막 첫 원고에 들어갑니다. 이렇게 미니홈피에 글 쓰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. 그것은 기록하기 위함입니다. 그렇지 않으면 나는 오백 년 후 정말이지 한 먼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.

 

04/

넌 달라 튕기지 않아 괜히 바쁜 척 하지 않아

전화를 한 번에 받아 카톡을 바로 확인해 

답장이 너무 빨라 깜짝 놀라

너 같은 남자 귀해 세상에 없어 

네가 쓰는 퍼퓸 핼무트랭 리미티드더라 

네 빛바랜 무스탕 역사가 있어

스토리 있어 진정성 있어 섹시해

네 욕실에 구겨진 베쓰가운

베개에 떨어진 네 머리카락

너네 집 가족사진 그 안에 반듯한 네 미소

한겨울에 검게 탄 네 얼굴